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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71]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출격! 제2차 당항포 해전

by 역사채우기 2022.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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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8월, 조선 조정에서는 일본군의 해상 퇴로를 차단함은 물론, 연합함대의 지휘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전라좌수사 이순신을 경상좌ㆍ우수영, 전라좌ㆍ우수영, 충청수영의 수군을 총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고, 이순신은 전라좌수영의 본영인 여수를 떠나 한산도에 전진기지(통제영)를 세웠습니다.

통제영 제승당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보통의 경우 경상우수사가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하였으므로 경상우수사 원균이 개전 초반 70척 혹은 100척의 함대를 수장시키지 않았더라면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경상우수사 원균



이후 1594년 3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일본군의 동향을 살피던 중

 

당항포에 적선 30여 척이 정박해 있다

 

는 첩보를 받고 다시 한번 출정에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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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항포의 위치(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이는 이순신의 6차 출전이었으며, 동원된 전선은 도합 124척으로, 지금까지의 출정 중 가장 많은 함대를 이끌고 나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역시 휴전 기간이었으나 약속을 먼저 이행하지 않은 일본군의 선례(제2차 진주성 전투)가 있었고, 일본군이 백성들을 향해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기 때문에 이순신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3월 4일, 이순신은 20척의 전선을 견내량으로 보내 혹시 있을 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였고, 전라좌수영, 경상우수영에서 각각 10척, 전라우수영에서 11척을 뽑아 함대를 편성하여 당항포로 진격하게 하였고, 광양현감 어영담을 사령관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견내량과 한산도의 위치(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광양현감 어영담(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그리고 이순신은 나머지 함대를 이끌고 학익진을 펼치며 진격하였고, 다른 방향에서 지원군이 오거나 당항포에 정박해있는 적선이 도망갈 길을 완전히 차단한 후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학익진(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어영담이 이끄는 함대가 선두에서 맹렬히 포격하자 일본군은 삽시간에 무너졌고, *읍전포에서 6척, 어선포에서 2척, 아자음포에서 2척을 깨뜨리면서 적선 총 10척을 격침시켰습니다.

 

* 읍전포 : 창원시 진동면 고현리
어선포 : 고성군 회화면 어신리
아자음포 : 고성군 동해면 양촌리 법동마을



이어서 이순신이 이끄는 본대가 73척의 함대를 이끌고 포구에 정박해있던 적선 21척을 분멸시키면서 전투는 종료되었고, 패잔병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육지로 모두 도망가버렸습니다.

이 전투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임명된 후 첫 승리를 거두었고, 18번의 전투를 연승으로 마무리 지었으나 명나라 선유도사였던 담종인이 금토패문을 보내 일본군에 대한 공격을 중지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담종인의 금토패문

 


또 한 번 이순신에게 박살이 난 일본군이 겁을 먹고 명나라에 조선 수군의 공격을 멈춰달라고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이순신은 격분하여 담종인에게 다음과 같은 답서를 보냈지만, 공세를 이어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다음 시간에는 영등포ㆍ장문포 해전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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