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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78]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의 첫 출전! 기문포 해전

by 역사채우기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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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친척이었던 안중홍이 찾아와 대화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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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이 "제가 이 직함을 영화롭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순신에 대한 치욕을 씻게 된 것이 통쾌합니다"라고 말하자
안중홍은 "적을 무찔러서 이순신보다 더 큰 공을 세워야 진짜 치욕을 씻었다고 할 수 있지, 겨우 이순신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치욕을 씻었다고 할 수 있소?"라고 답하니

원균은 "멀리서 싸울 땐 편전을 쏘고 가까이서 싸울 땐 칼과 몽둥이를 쓰면 됩니다"(!)라고 받아치니
원균이 돌아간 이후 안중홍은 "원균의 사람됨을 보니 큰 일을 하기는 글렀다. *조괄과 *기겁도 저 정도는 아닐 것이다"라며 크게 탄식하였다.

- 안방준 [은봉전서]

 

* 조괄 :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조나라 병사 45만을 잃은 지휘관
* 기겁 : 중국 춘추전구시대 때 제ㆍ연나라 전쟁에서 다 이긴 전쟁을 크게 패한 지휘관

안방준의 은봉전서(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기문포 해전

1597년 3월 8일,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거제도 기문포에 일본군이 상륙하였다는 첩보를 받고 출정하였습니다.

이는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지 한 달 째 되던 때였습니다.

원균



그렇게 원균은 공을 세울 욕심에 밤새 노를 저어 3월 9일 새벽에 기문포에 도착하였습니다.
격군들의 피로 따위는 생각지 않는 원균

당시 기문포에 있던 일본군은 휴전 기간이었기 때문인지 조선 수군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밥을 지어 먹고 있었습니다.

원균은 *항왜 남여문을 보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했고, 이야기가 끝나자 일본군 일부가 원균의 배에 올라왔습니다.

* 항왜 : 조선이나 명나라에 투항한 일본군

 


그러자 원균이 그들에게 술과 음식을 나눠주며 맞이하니 일본군은 기뻐하며 무수히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다시 그들의 배로 돌아간 순간 원균은 지휘기를 들어올려 갑자기 포격을 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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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기(사진은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지만 조선 수군 역시 비슷했을 것입니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맹렬한 포격이 이어졌고, 조선 수군은 빠른 속도로 적선을 추격하였습니다.

원균이 이때까지 기다렸던 이유는 적을 해전에서 무찔렀다는 전공을 세우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성현령 조응도의 함선이 적선에 달라붙자 일본군이 조응도의 배에 올라타 죽기 살기로 도륙하였고, 조응도는 바다에 빠졌습니다.

근접전을 펼치는 조선군



이렇게 순식간에 판옥선 1척이 일본군의 손에 들어가버렸고, 일본군은 판옥선을 타고 재빨리 자신의 진영으로 후퇴하려 했습니다.


기껏 전공을 세울 욕심에 출전했는데 얼마 되지도 않는 적에게 판옥선까지 뺏길 수는 없었던 원균은 적이 타고 있는 판옥선을 격침시키라고 명했습니다.

결국 조응도의 함선은 조선 수군의 각종 화포와 불화살을 맞고 격침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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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침된 판옥선(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이는 1592년, 옥포 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둔 후 1594년의 장문포 해전까지 20차례에 가까운 해전을 치르는 동안 단 한 척의 판옥선도 격침되지 않았던 불멸의 판옥선이 처음으로 격침된 순간이었습니다.

그것도 아군의 손에 의해서 말입니다.


거기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140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음에도 원균은 어찌됬든 적을 격퇴했으니 선조에게 바로 장계를 올렸고, 선조는 원균과 이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이들에게 포상할 것을 지시합니다. 

선조(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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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사 원균이 임명을 받자마자 곧 무용을 떨쳐 적선 3척을 포획하고 수급 47급을 바쳤으니 매우 가상하다.
원균과 공이 있는 사람을 즉시 논상하고, 혹 관원을 보내 호군하여 장사들을 격려할 일을 의계하라.
그리고 적의 수급과 계본을 가지고 온 사람도 아울러 참작하여 논상할 것으로 비변사에 말하라.

[선조실록]

 

 

 

다음 시간에 기문포 해전의 전말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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