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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80] 도원수 권율에게 곤장을 맞는 원균

by 역사채우기 2022.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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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부산포 공격에 30만 육군이 필요하다는 장계를 올리자 조정에서는 당연히 그 요청을 들어줄 순 없었고 대신 도원수 권율 휘하의 육군 5천여 명을 수군으로 배속시켜 주었습니다.

지난날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인 시절에는 수군 진영의 병사들을 육군으로 배속시켰던 일이 있었으니 선조가 원균을 얼마나 총애했는지, 그리고 원균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컸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선조(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이렇게 원균은 일부 병력을 지원받게 되었고, 계속되는 출전 압박에 부산포로 출정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1597년 6월 18일, 원균은 출정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적선 두 척을 불태웠을 뿐 연안에 늘어선 왜성에서의 포격과 일본 수군의 저항으로 보성군수 안흥국전사하는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습니다.


이를 당연히 조정에서는 아니꼽게 생각하였고, 원균은 7월에 다시 한번 출정에 나섰습니다.

7월 8일, 조선 수군은 적선 8척을 격침시켰으나 다음 날 서생포(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에서 판옥선 20여 척을 잃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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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조선 수군은 일본 수송선을 발견했고, 일본군이 도망가자 원균은 전공에 목마른 나머지 추격에 나섰는데 추격했던 판옥선 중 12척이 해류에 휩쓸려 버렸고, 12척 중 7척은 서생포로, 나머지 5척은 *모포로 떠내려갔습니다.

 

* 두모포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서생포와 두모포의 위치(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초7일 왜선 오백여 척이 부산에서 나오고, 초9일 왜선 천 척이 합세하여 우리 수군과 절영도(부산광역시 영도구) 앞바다에서 싸웠는데, 우리 전선 다섯 척이 표류하여 두모포에 닿았고, 또 일곱 척은 간 곳이 없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곧 종사관 황여일이 군사 점호하는 곳으로 달려 나가서 황 종사관과 상의하였다.

우리 수군 스무여 척이 적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으로 분통이 터진다. 한스럽기 짝이 없는 것은 왜적을 막아낼 방책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배들이 곧장 돌격하려는데, 왜놈들은 몽땅 뭍으로 올라가고 빈 배만 걸려 있어, 우리 수군이 그것들을 끌어내어 불질러 버리고, 그 길로 부산 절영도 바깥 바다로 향하다가, 마침 적선 일천 여 척이 대마도에서 건너와서 서로 맞아 싸우려는데, 왜선이 흩어져 달아나서 끝까지 섬멸할 수가 없었다.
세남이 탔던 배와 다른 배 여섯 척은 배를 제어할 수가 없어 표류되어 서생포 앞바다에 이르러 상륙하려다가 모두 살육 당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미더운 것은 오직 수군뿐인데, 수군마저 이와같이 희망이 없게 되었으니, 거듭 생각할수록 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이순신 [난중일기] 7월 14일~16일의 기록

 

 

이렇게 이번 출정에서 원균은 적선 10척을 쳐부수고 판옥선 32척을 잃는 이순신이 지휘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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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이순신은 지금까지 단 한 척의 판옥선도 격침된 적 없는 완벽 그 자체였기 때문에 더 비교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얼마 후 원균의 패배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자 도원수 권율은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을 불러다가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곤장을 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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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장 맞는 원균(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권율원균이 직접 바다에 내려가지 않고 적을 두려워하여 지체하였다 하여 곤장을 치면서 말하기를, "국가에서 너에게 높은 벼슬을 준 것이 어찌 한갓 편안히 부귀를 누리라 한 것이냐? 임금의 은혜를 저버렸으니 너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라 하고 곧 도로 보내었다.
이날 밤에 원균이 한산도에 이르러 유방하는 군사를 있는 대로 거느리고 부산으로 향하였다.

[난중잡록]

 

권율원균이 아무런 전과도 올리지 못했다며 격서를 보내 원균을 불러와서 곤장을 치고 다시 나가 싸우라고 독촉했다.
원균은 군중으로 돌아오자 더욱 화가 나서 술을 마시고 취해 누웠는데 장수들이 원균을 보고 군사 일을 의논하고자 했으나 만날 수 없었다.
그날 깊은 밤 왜선이 습격해오니 군이 크게 무너졌다.
원균은 달아나 바닷가에 이르러 배를 버리고 해안에 올랐다.

[징비록]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할 때 자신이 통제사가 된다면 부산포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 장계를 올린 바 있고, 병력이 부족하다 하여 권율 휘하의 병력 일부까지 배속시켜주었는데 출정할 때마다 부산포는 고사하고 금쪽같은 판옥선을 계속 날려버리니 화가 난 권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원수 권율

 


다음 시간에는 칠천량 해전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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