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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94] 1척 vs 333척 극한의 컨트롤! 명량대첩(1)

by 역사채우기 202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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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이순신의 삼도수군통제사 재부임 후 치러진 8월 27일의 어란포해전과 9월 7일의 벽파진해전으로 조선 수군은 일본군의 소규모 전선을 격퇴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뒤이어 다가올 333척의 대규모 선단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란포해전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historicalhistory.tistory.com/134

 

[임진왜란92]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 수군을 폐하라 칠천량해전의 패배로 조선 수군이 궤멸되고, 뒤이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부임 된 이순신은 칠천량해전의 보고를 접한 그 날부터 남쪽으로 내려가 흩어진 군사와 군수품을 모

historicalhistory.tistory.com

 

벽파진해전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historicalhistory.tistory.com/135

 

[임진왜란93] 13척 vs 13척! 벽파진해전

1597년 8월 18일, 회령포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에게서 12척의 판옥선을 인계받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8월 26일에 전라우수사 김억추의 합류로 판옥선 1척이 더 확보되어 조선 수군은 13척의 판

historicalhistory.tistory.com

 


이에 9월 15일, 진영을 해남의 전라우수영으로 옮긴 이순신은 군사들을 불러 모은 후 다음과 같이 말하며 전투에 앞서 결의를 다졌습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했으며, 또한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그대들 뭇 장수들은 살려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긴다면 즉각 군법으로 다스리리라!"

- 9월 15일의 [난중일기]

 

해남 전라우수영

 


이날 밤, 잠이 든 이순신은 꿈에서 신인(神人)을 만났고, 그는 이순신에게 어떻게 싸워야 다가올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꿈에 어떤 신인(神人)이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하였다."

[난중일기] 

 



그리고 다음 날인 9월 16일, *울돌목(명량)에 진을 친 조선 수군을 향해 333척의 적선이 순조류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다가왔습니다.

 

* 울돌목 : 물길이 휘돌아 나가는 바다가 마치 우는 소리를 내는 것처럼 들려서 울돌목(초속 약 6m/s 이상)이라 하며, 명량은 순우리말인 울돌목의 한자식 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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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울돌목)의 조류

 

 


이에 맞서 조선군은 명량의 좁은 수로에 13척의 판옥선을 배치해 수많은 적선이 한꺼번에 진입할 수 없고 축차 투입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었고, 판옥선 뒤에는 피난민과 일반 백성들의 어선 100여 척을 끌어아아 아군 전선의 수가 많아 보이게 했으며, 순조류를 타고 몰려드는 일본군에게 유리한 시간, 그리고 조선군에게 불리한 시간을 어떻게든 버텨서 물살이 조선군에게 순조류가 되는 시점에 반격하여 적을 격퇴할 계획이었습니다.  

명량대첩 상황도



당시 상황이 일본 측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명량에는) 판옥선이 13척 있었다.
큰 강의 하구에서 빠른 물결이 들고 나다가 잠시 물 흐름이 약해진 사이에 13척이 있던 것이다.

이를 발견하고 반드시 무찌르자고 수군들이 다짐하며 즉각 돌진했다.
대선(아타케부네)로는 이 좁은 물목 사이로 진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세키부네로 통일해 전투에 임하였다.

- 명량대첩 당시 일본 수군 최고 지휘관이었던 도도 다카토라의 [고산공실록]

 



| 1 vs 333

하지만 일본군 측에서는 조선 수군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적선의 규모를 보고 겁에 질린 대장선(이순신)을 제외한 조선 수군은 모두 뒤로 물러나 도망갈 틈을 엿보고 있었으며, 전라우수사 김억추*수 마장이나 뒤로 물러나서 전투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 한 마장 = 약 393m

 


결국, 대장선 홀로 밀려드는 일본군을 막아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졌던 것입니다.

대장선 혼자 적을 맞아야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영화 명량 중에서)(오른쪽 상단 희미한 배 한 척이 대장선)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산 너머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백성들은 통곡했으며,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장수들을 본 이순신은 분해서 탄식을 금치 못했습니다.

 

뭇 장선들을 돌아보니, 물러나 먼바다에서 관망하며 나아가지 않고 배를 돌리려 하고 있었다.

[난중일기]

 


평소 같았으면 당장 쫓아가서 목을 내려치고 싶은 심정이었겠지만 이 상황에서 이순신마저 평정심을 놓치고 적에게 뒤를 보인다면 남해의 제해권은 모조리 빼앗기게 되는 것이고, 전쟁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게 불리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순신 역조류를 견디면서 지자총통ㆍ현자총통 등을 발사해 다가오는 적선을 줄줄이 격침시켰습니다.



다음 시간에 명량대첩에 대해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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