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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구려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복지제도

by 역사채우기 2023.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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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한 해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했고, 왕도 같은 마음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과 같은 제천행사를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부여의 제천행사 장면(드라마 주몽 중에서)

 

 

하지만 홍수와 가뭄, 메뚜기 떼 등으로 인해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해지면 일반 백성들은 귀족들에게 무거운 이자를 감수하고 식량을 빌려 생활하곤 했습니다.

농민 : 이자가 비싸도 굶어 죽지 않으려면 당장은 먹고 살아야지!

 

 

그런데 흉년이 겹쳐서 빌린 식량을 제때 갚지 못하면 농민들은 땅을 팔았고, 그조차도 없는 농민들은 노비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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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 벼타작(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이런 상황이 계속될수록 귀족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반대로 나라에서는 세금을 낼 농민들이 부족해져서 국고를 충당하기 어려웠고 왕권도 같이 약화되었습니다.

노비로 전락하는 농민이 많으면 나라 재정이 부족해짐

 

 

이러한 때에 고국천왕(고구려의 9대 왕)이 겪은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고국천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울고 있는 한 백성을 발견했습니다.

왕이 그 이유를 묻자 그 백성은 가난해서 품팔이를 하면서 그 돈으로 어렵게 부모님을 모시며 살아왔는데 올해는 곡식이 자라지 않아 품팔이를 할 곳이 없어서 한 되의 곡식조차도 얻을 수 없어서 울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왕이 그 얘기를 듣고는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며 그 사람에게 옷과 음식을 주고 위로한 뒤, 관리들에게 생활이 어렵거나 가난한 자들을 찾아 도와주도록 하였습니다.

 

 

위의 일화에서 영감을 받은 고국천왕은 굶주린 백성들에게 봄에서 가을까지 곡식을 빌려주는 대신 겨울에 약간의 이자를 붙여서 갚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진대법'이며,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복지제도(빈민 구휼 제도)입니다.

당시 고구려의 국상이었던 '을파소'가 만들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귀족들에게 빌릴 때보다 부담이 덜한 진대법의 이자

 

 

 

이후 이 법은 고려의 의창 제도와 조선의 환곡 제도로 이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후기에는 탐관오리들의 횡포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백성의 고혈을 짜는 용도로 악용되었습니다.

고국천왕 : 내가 만든 법을 이런 식으로 악용하다니!

세도정치기 환곡의 폐단

 

 

 

다음 시간에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인 이유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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