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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구려의 역사

조국을 배신한 형제들의 난1

by 역사채우기 2023.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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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생(연개소문의 장남) vs 연남건 연남산(연개소문의 차남과 삼남)

 

연개소문이 죽자 연남생이 대막리지 직을 이어받았으나 연남생이 순시를 나갔을 때 어떤 사람이 연남생과 그 형제들을 이간질했고, 처음에는 이를 믿지 않았지만 계속된 이간질에 연남생은 이에 속아서 동생들을 의심하여 첩자를 보냈습니다.

연남생(드라마 연개소문 중에서)

 

 

하지만 그 첩자는 남건과 남산 형제에게 붙잡히고 말았고, 이에 분노한 남건남산 형제는 정변을 일으켜 연남생의 집을 습격했고, 연남생의 아들이자 그들의 조카인 연헌충을 죽인 뒤 왕명을 사칭하여 남생에게 도읍인 평양으로 돌아오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연남건과 연남산(드라마 연개소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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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들의 죽음을 전해들은 연남생은 돌아가면 죽음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국내성 일대에서 자신을 이끄는 군사들과 함께 내전을 일으켰으나 연이어 패하면서 뒤로 몰리고 있었고, 이에 아들인 연헌성당나라로 투항하자고 하자 그 뜻을 받아들여 자신이 다스리는 과 남은 군사들, 그리고 백성, 휘하에 있던 거란 말갈족까지도 함께 당나라에 바치는 최악의 매국 행위를 하고 말았습니다.

당나라에 항복하는 연남생과 연헌성(드라마 연개소문 중에서)

 

 

이 일로 제2차 고당전쟁 이후 예의주시하던 당나라가 기회를 포착하여 연남생을 앞세워 고구려를 공격했고, 고구려는 잘 싸웠으나 앞선 전쟁에서의 피해 누적, 신성에서 성문을 연 사부구, 평양성 성문을 연 승려 신성 등에 의해 668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부여융(당나라 웅진도록) vs 부여풍(백제부흥운동)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멸망한 뒤 백제 부흥을 꾀했던 인사들은 정통성 확보와 구심점을 모으기 위해 일본에 가 있던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풍을 왕으로 삼았고, 당나라는 백제 유민 회유와 신라 견제를 위해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세우고 웅진도독으로 부여융을 내세웠습니다.

 

 

이들은 백강 전투에서 백제부흥군의 수장(백제+왜)과 당나라가 세운 괴뢰정권의 수장(당나라+신라+나당연합군에 항복한 백제인)으로 맞붙었는데, 결과는 부여융의 승리였습니다.

부여풍(드라마 대왕의 꿈 중에서)과 부여융

 

 

 

다음 시간에는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타국에서 출세한 인물들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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