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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구려의 역사

광개토태왕, 동북아에 고구려의 천하관을 성립하다!

by 역사채우기 2021.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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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저번 시간에 이어서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 고구려 신라 vs 백제 가야 왜

앞서 아신왕(백제 17대 왕)은 396년에 고구려 광개토태왕에 패한 후 항복하였으나 속으로는 절치부심하며 뒷일을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아신왕(드라마 광개토태왕 중에서)

 

 

아신왕은 백제군 단독으로 고구려를 상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여 가야왜국을 끌어들였고, 고구려 대신 고구려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신라를 공격하였습니다.

 

그러자 내물왕(신라의 17대 왕)은 세 나라의 침입으로 자칫하면 나라가 멸망할 위기에 봉착하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 민족기록화

 

 

이에 광개토태왕은 400년, 보병과 기병 5만 대군을 신라로 보내 왜군을 무찌르고, 가야 연맹을 이끌던 금관가야까지 공격하니 금관가야는 세력을 잃고 겨우 명맥만 유지한 채 연맹의 주도권이 대가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광개토태왕은 이 과정에서 신라의 왕을 실성왕(신라의 18대 왕)으로 교체하였고, 광개토태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호우명 그릇을 통해 당시 고구려가 신라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호우명 그릇 사진

 


이렇게 광개토태왕이 서북방(거란), 동북방(숙신), 남방(백제, 가야, 왜국)까지 평정하였으나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남아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연의 뒤를 이어 세워진 후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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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연 정벌

400년에 고구려가 신라의 요청에 응하여 5만 군사를 파견한 일을 틈타 후연 왕 모용성(중국 오호십육국 시기 후연의 3대 왕)은 고구려의 신성남소성을 함락시키며 700리나 되는 땅을 빼앗았습니다.


이에 광개토태왕백제, 가야, 의 연합군을 물리친 뒤 402년에 후연숙군성을 공격하니 평주자사 모용귀가 성을 버리고 달아나 함락되었고, 404년에는 연군(현 베이징 인근)을 함락시켰습니다.

고구려의 정복전쟁 지도

 

 

그러자 405년에 후연요동성을 공격하여 함락 직전까지 내몰았으나 후연의 4대 황제인 모용희는 요동성을 깎아 평지로 만들어 자신과 황후가 수레로 입성하기 전까지 병사들의 입성을 막는 명령을 내렸고, 덕분에 고구려는 방어에 성공하였습니다.


406년, 후연목저성을 공격하였으나 이번에도 고구려군의 방어를 뚫지는 못했으며, 407년에는 광개토태왕이 5만 대군을 이끌고 후연의 수도 용성을 사방에서 공격하여 후연 군대를 격파한 뒤 6개의 성을 추가로 점령하는 동시에 갑옷 1만여 벌을 비롯한 수많은 군수물자까지 노획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후연이 멸망 직전에 다다른 이때, 후연의 장군 풍발고운(고국원왕 시기 전연에 포로로 잡혀갔던 고구려 백성의 손자)을 왕으로 추대하여 후연을 멸망시키고 북연을 건국하였습니다.

북연 초대 황제 고운(드라마 광개토태왕 중에서)

 

 

광개토태왕고운에게 동족의식을 느끼고 408년에 서로 우호 관계를 맺으면서 후연과의 전쟁은 고구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 동부여 정벌

이렇게 선대 왕으로부터 이어진 원수를 제대로 갚은 광개토태왕동부여(숙신 부근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가 신하의 예를 다하여 조공을 바치지 않자, 410년, 직접 친정하여 동부여의 수도를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동부여의 귀족들이 자진해서 항복하니 동부여가 고구려에 병합되었고, 광개토태왕의 길었던 원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광개토태왕이 20년간의 원정을 통해 백제, 가야, 왜국, 거란(비려), 숙신, 후연, 동부여에 이르기까지 고구려를 둘러싸고 있던 나라를 모두 복속시키는 데 성공하여 동북아시아에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을 성립하였습니다.


또한, '영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고, 강해진 국력에 걸맞게 고구려 왕의 칭호를 태왕으로 높인
광개토태왕이었지만 413년,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 열여덟 살에 왕위에 올라 칭호를 영락대왕이라 하셨다
왕의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엄은 온 세상에 떨치셨다.
왕이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자 백성이 모두 생업에 힘쓰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풍족해졌으며, 곡식이 풍성하게 익었다.
그런데 하늘이 우리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아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시었다.(광개토왕릉비문 중에서)

광개토대왕릉비 사진

 

 

 

다음 시간에는 고려 말 화약을 개발하여 왜구의 침입을 무찌른 최무선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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