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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프랑스군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박해를 이유로(*병인박해) 1,5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도를 공격하여 영종진과 갑곶진 일대를 점령했으나 정족산성에서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패하면서 철수하였습니다. (병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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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인박해 : 프랑스 선교사와 천주교도들을 탄압하여 8천여 명이 순교한 사건
그리고 1871년, 미군도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강제 개항을 이유로 강화도를 공격했고, 초지진과 덕진진, 광성보까지 점령했으나 조선군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철수하였습니다. (신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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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너럴셔먼호 사건 :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 와서 통상을 요구하며 백성을 살해하는 등 행패를 부리자 평안감사 박규수의 군대가 배를 불태고 선원들을 살해한 사건
그런데 1875년, 일본군은 고작 22명을 태운 군선 1척으로 강화도에 침입하여 초지진을 파괴하고 영종진을 함락시켰으며(운요호 사건), 이 일을 계기로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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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강화도 조약이 불평등 조약인 이유는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조선의 해안을 측량할 수 있다는 조항과 치외법권이 들어가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병력의 수적이나 질적인 부분 모두 일본군이 미군과 프랑스군에 비해 매우 열세였지만 조선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로 초토화된 강화도의 진지를 재정비하고, 노획당한 무기를 보충할 시간과 자금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랬기에 미국과 프랑스라는 강대국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그들의 야욕을 좌절시켰던 조선은 허점을 노린 일본군에게 조선은 허무하게 굴복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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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간에는 러시아군을 2번이나 격퇴한 조선 조총병의 활약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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