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모피 무역에 열을 올리던 러시아(당시 루스 차르국)는 동쪽으로 계속 진출했고, 아무르강(흑룡강) 일대에서 청나라와 충돌했습니다.
당시 청나라는 명나라(남명)를 상대하느라 러시아에 대적할 여력이 부족했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굴복시킨 조선에 조총병 파병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때 효종(조선 17대 왕)은 아버지(인조)가 삼전도에서 굴욕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 준비에 한창이었기 때문에 양병 중이던 조총병의 실력을 평가할 목적으로 청나라의 요구에 응했습니다.
그래서 1654년, 변급을 지휘관으로 하여 152명의 조총병이 주축이 된 병력을 파견했고, 청나라군과 연합하여 단 1명의 사상자도 없이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 돌아왔습니다. (1차 나선정벌)
하지만 조선군이 돌아간 뒤 청나라는 또 러시아군에 패배했고, 조선에 재파병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조선에서 규모를 확대하여 신유를 지휘관으로 삼아서 265명의 병력을 파견했으며, 이번 원정에서도 조선과 청나라 연합군은 화력을 앞세워서 러시아군을 몰아붙였고, 적선을 불태우는 등 크게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리품을 탐낸 청나라 지휘관 사르후다가 화공을 금지하여 공격이 주춤한 사이 적의 반격을 허용해 조선군이 7명이 전사하고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봤고, 청나라군은 전사자 80여 명에 부상자가 수백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사르후다는 어쩔 수 없이 화공을 지시하여 전투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 전투의 결과 조선과 청나라 연합군은 러시아군 270명을 사살하고, 배 7척을 불태웠으며, 4척을 나포하는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1689년, 청나라와 러시아 사이에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양국 간에 국경을 확정짓게 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서로 다른 나라로 참전하여 벌어진 동족상잔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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