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충신
정충신은 노비 출신이었고 임진왜란 때 권율(당시 광주목사) 휘하에서 종군하여 활약했는데, 의주로 몽진해있던 선조에게 일본군 점령지를 우회해서 구사일생으로 이치전투의 승전보를 전달한 공로로 면천(노비에서 평민으로 신분이 높아짐)되었습니다.
이치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manage/posts?searchKeyword=%EC%9D%B4%EC%B9%98&searchType=title
그리고 이때부터 정충신은 이항복(권율의 사위)의 밑에서 학문을 닦아 무과에 급제하였습니다.
* 참고로 노비는 과거에 응시할 수 없지만 평민부터는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이후에는 후금의 정세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였고, 이어서 이괄의 난을 진압하고 정묘호란 때 부원수로 임명되기도 했으며, 병자호란 직전에 숨을 거두고 충무공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정충신은 노비 출신이지만 그의 이름답게 충신(忠臣)다운 삶을 살다간 인물입니다.
정충신 : 충무공은 이순신 장군에게만 해당되는 시호가 아니오!
| 정명수
정명수는 명나라의 후금 공격 지원 요청으로 강홍립이 파병될 당시, 병졸의 신분으로 나섰으며, 사르후 전투에 참전했으나 후금군에 패하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포로생활 중에 여진어(후금 언어)를 익혔으며, 그 특기를 살려 청나라(후금에서 청나라로 국호가 변경됨)에서 통역 업무를 맡았고 조선의 내부 사정을 밀고하면서 청나라의 앞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정명수의 악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청나라를 등에 업고 계속해서 조선을 압박했기 때문에 조선 조정에서는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도 정명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정에서는 그를 달래주기 위해 벼슬을 계속 올려주어 영중추부사(정1품의 관직)까지 승진했고, 그에 따라 권세를 휘둘러 정명수에게 뇌물을 바치는 사람이 줄을 이을 정도였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천민 출신으로 1인자가 된 인물인 금강야차 이의민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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