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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13] 거북선의 대활약! 사천해전

by 역사채우기 2021.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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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1차 출정 때 전라좌수군과 경상우수군의 연합 함대에 합류하지 못한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전선과 합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월 27일, 경상우수사 원균으로부터

"적선 10척이 사천에 있다"

라는 보고를 받고는 사천의 일본군을 공격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이순신이억기에게 먼저 출정할테니 뒤따라 합류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고는 출정 준비에 임하였습니다.

전라좌수영과 사천해전의 장소(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그렇게 이순신은 5월 29일, 1차 출정 때에는 제외됐던 거북선까지 동원하여 23척의 전함을 이끌고 2차 출정에 나섰으며, 노량에서 원균이 이끌고 온 판옥선 3척과 합류하여 사천(경남 사천시 용현면으로 추정)으로 향했습니다.

 

거북선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은 분은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33

 

조선 최고의 돌격전함! 거북선

https://youtu.be/4bkZUX0zezw 이번 시간에는 조선 최고의 돌격전함인 거북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태종 시기 첫 거북선 거북선은 조선 초기 1415년(태종 15년),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합니

historicalhistory.tistory.com



이순신원균의 연합함대는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던 중 곤양에서 사천으로 향하던 일본군 척후선 1척을 격침시킨 후 사천으로 계속 나아갔습니다.
이후 연합함대가 사천 선창에 도착하니 왜선 12척이 포구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그때 바다는 간조기(썰물)였기 때문에 함대를 포구로 이동하기 어려웠고, 포구로 가더라도 단병접전에 강한 일본군을 상대해야하는 단점이 있었으므로 이순신은 후퇴하는 척하며 일본군을 먼 바다로 유인하였습니다.

썰물 때의 바다(수심이 얕고 갯벌이 생겨 작전을 수행하기 어렵다) 


그러자 포구에 있던 일본군은 배에 승선한 후 별다른 의심 없이 조선군을 추격하며 먼바다로 따라 나왔습니다.
이윽고 조선군은 왜선을 먼바다까지 유인하는 데 성공했고, 마침 조수까지 밀려들면서 만조기(밀물)가 되었습니다.

* 이순신 장군은 만조기 시간을 미리 알고 작전 시간을 맞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이순신은 뱃머리를 돌렸고, 거북선 2척이 돌격선의 임무를 띄고 선두로 나가 적진으로 돌진했습니다.
일본군은 생전 처음 보는 거북선을 보자 당황했고, 조총을 쏘아댔으나 조총의 탄환은 거북선의 선체를 뚫을 수 없었고, 거북선은 적진 한가운데에서 전후좌우로 천·지·현·황 등의 화포를 무자비하게 쏘아대니 왜선은 일거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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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의 활약(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 천·지·현·황 : 천자총통, 지차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천자총통에 대장군전을 탑재한 사진



이렇게 큰 타격을 입힌 조선군은 주력 전함인 판옥선이 뒤이어 진군하며 남은 적선을 향해 철환, 장편전 등을 쏘며 격침시키자 일본군은 다시 사천 선창으로 이동한 후 배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수많은 일본군을 죽였고, 왜선도 12척 중 10척을 격침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남은 왜선 2척은 격침을 못 시킨 것이 아니라 안 시킨 것이었습니다.
모든 배를 격침시키면 패잔병이 주변 마을을 약탈할 것이라 생각한 이순신이 일부러 왜선을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전공을 위해 수급(적군의 머리) 취하기에 여념이 없던 원균과는 반대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6월 1일, 일본 패잔병은 2척에 승선한 뒤 도주하려 했으나 이순신이 모두 불태워버리면서 사천해전은 조선군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렇게 조선군은 사천에서 적선 13척을 모두 격침시켰으며, 조선군은 이순신, 나대용 포함 3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 13척인 이유는 5월 29일에 척후선 1척, 왜선 10척을, 6월 1일에 남은 2척을 추가로 격침시켰기 때문입니다.

사천해전도(중앙에 이순신 장군이 부상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따)



이는 대장선도 조총의 유효사거리 내에 있을 정도로 최전방에서 진두지휘했다는 의미이며, 최고 지휘관이 부상당할 정도로 전투가 생각보다 치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순신 장군의 5번째 해전인 당포해전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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