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까지 포함한다면 6.25 전쟁이 국군과 미군 등의 UN군을 합하면 대략 100만이 넘었고, 인해전술로 대표되는 중공군과 북한군을 합치면 수백만을 웃돌지만, 이번 시간에는 현대전을 제외한 전쟁을 다루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6.25 전쟁을 제외한 전쟁 중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군대가 동원된 전쟁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입니다.
고구려와 수나라는 크게 4차례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 중에서 수 양제의 2차 전쟁 때가 가장 규모가 컸으며, 나머지 전쟁도 수나라의 병력만 살펴봐도 1차 때 30만, 3차 때 수십 만, 4차 때도 수십 만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차 전쟁 때는 얼마나 많은 군대가 동원되었을까요?
고구려군의 규모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기록이 부족해 정확한 수치는 알 수가 없고, 수나라군의 규모는 무려 113만 3천 8백이나 되었는데 이것은 단지 전투병만을 기록한 수치인데다가 각지에서 보급을 하는 인원까지 포함하면 무려 3백만이나 되는 규모였다고 하여 보는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대가 동원된 역사는 고구려-수나라 전쟁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갈아치우지 못하다가 제 1차 세계대전 때 날고 기는 제국주의 열강의 군대가 서로 힘을 모아 세계 각지에서 전쟁을 한 이후에야 깨지게 됩니다.
당시에나 지금이나 중국이 인구가 많았던 것은 변함이 없지만 지금도 운용하기 힘든 규모의 군대를 1400여년 전에 운용했다는 것이 믿기 힘들지만 수나라의 역사서인 [수서]와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에는 당시 수나라군의 편제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과장의 여지를 불식시키고 있습니다.
모두 1백 13만 3천 8백 명(전투병)인데 2백만 명이라 하였으며, 군량을 수송하는 자는 그 배였다.
매일 1군씩 보내어 서로 거리가 40리가 되게 하고 진영이 연이어 점차 나아가니 40일 만에야 출발이 완료되었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이어지고 북과 나팔 소리가 서로 들리고 깃발이 960리(약 400km)에 걸쳤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하지만 수 양제는 수백만의 인원을 동원했으면서 요동성 하나 깨뜨리지 못했고, 내호아의 수군은 고건무(훗날의 영류왕)에게 패배했고, 회심의 일격으로 보낸 우중문과 우문술의 30만 별동대가 살수에서 을지문덕에게 참패를 당하면서 수백만의 대군은 성 하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고구려-수나라 전쟁 당시의 요동성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9
살수대첩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21
전쟁이 끝나고, 이 전쟁에서 수나라가 패배한 일은 수나라 멸망의 단초가 되었으며, 수백만의 군대를 물리친 고구려와 그 후손들에게는 민족적 자긍심을, 그리고 주변국에는 한민족의 저력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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