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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의 손에 죽은 전쟁 영웅들 | 수나라 군대를 물리친 영류왕의 죽음 영류왕(고건무, 훗날 고구려 27대 왕으로 즉위)은 왕이 되기 이전,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우중문의 30만 별동대 보급을 위해 수군을 이끈 내호아의 군대를 평양성으로 끌어들인 후 결사대를 이끌고 패퇴시킴으로써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대승을 거두는 밑바탕을 만들어주었습니다. * "그(고건무)의 효용이 절륜하여 500의 결사대로 내호아군(4만)을 패퇴시켰다" - [수서] 살수대첩과 고건무의 활약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21 한국 최고의 전투 2편(살수대첩) https://youtu.be/TFNTEjn-mBY 이번 시간에는 한국사의 3대 대첩 중 하나로 알려진 살수대첩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2023. 5. 31.
외국인 출신으로 우리나라에서 활약한 인물들 | 이지란 (퉁두란) 여진족 출신인 퉁두란(본명은 퉁쿠란투란티무르)은 고려에 귀화하여 이성계의 휘하에 들어간 뒤 의형제가 되었고, 이름을 이지란으로 개명하였습니다. 이후에는 고려 말 해안 전역을 약탈하던 왜구들과의 전쟁에서 전공을 세웠는데, 특히 황산(현 전북 남원시 일대)에서 한창 기세등등했던 적장 아지발도를 사살하는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황산대첩) 그리고 조선 건국 이후에는 개국 1등공신에 책록되었고, 1ㆍ2차 왕자의 난에 참여하여 이방원(훗날 조선 3대 임금, 태종)을 도왔습니다. | 김충선(사야가) 그리고 200년 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의 2군을 이끈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으로 참전한 사야가는 부산진성 함락 직후 조선에 귀화하여 크고 작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조선군 훈련과.. 2023. 5. 31.
발해 사신이 경악하고 일본인들이 부러워한 발해의 사치품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담비 가죽은 모피로 이용되어 매우 귀하게 여겨져왔고, 그것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발해의 특산품 중 하나였던 담비 가죽은 발해와 교류가 활발했던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며 지배층의 주요 사치품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값이 비싼 데다가 공급에 비해 수요가 너무 컸기 때문에 담비 가죽을 걸치고 있다는 것은 고귀한 신분임을 드러내는 표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919년에는 담비 가죽에 대한 웃지못할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 건너간 발해 사신단 일행은 연회에 참석한 뒤 한 일본인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때는 여름이었기 때문에 날씨가 매우 더웠는데도 그 일본인은 왕족이라는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담비 가죽으로 만들어진 옷 여덟 벌을 걸치고 있었.. 2023. 5. 31.
임진왜란 때 적과 가장 가까우면서 안전했던 곳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많은 백성들은 왜적의 공격을 피하고자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잘 훈련된 군대와 거북선을 앞세워 연전연승 하면서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었고, 제해권을 확보했습니다. 이후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강화가 진행되고, 교착상태가 지속되자 조선 수군은 한산도에 삼도(경상도ㆍ전라도ㆍ충성도)의 수군을 관할하는 전진기지(삼도수군 통제영)를 구축하면서 일본 수군과 지근거리에서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싸울 때마다 승리하는 조선 수군을 보며 최전방인 통제영 인근에 정착하는 사람이 많았고, 진주대첩의 소식이 알려진 진주성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진주대첩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 2023. 5. 30.
대조영 아들들의 형제의 난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만에 발해가 건국되었고, 대조영의 뒤를 이어 대무예(발해 2대 왕, 무왕)가 즉위했을 당시에는 동북쪽의 흑수말갈과 서쪽의 당나라가 발해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대조영의 발해 건국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3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일대기 https://youtu.be/pKAqd2Th6LA | 연개소문의 죽음과 고구려의 분열 연개소문이 죽자 그의 아들들은 대막리지의 자리를 놓고 내전을 벌이면서 고구려의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결국, historicalhistory.tistory.com 거기다 흑수말갈이 보고 없이 당나라와 접촉을 시도하자 무왕은 아우인 대문예에게 흑수말갈 .. 2023. 5. 29.
일본에서 1300년 넘게 고구려 왕족을 기리고 있는 신사 666년, 고구려 왕족 약광은 일본 야마토 정권에 사신으로 갔다가 2년 뒤에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11 고구려의 멸망 https://youtu.be/eyIphWEUjWM 이번 시간에는 고구려의 멸망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제2차 고당전쟁 661년 봄,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하남ㆍ하북ㆍ회남 지방의 67개 주에서 4만 4천여 명 historicalhistory.tistory.com 이후 약광은 일본에서 코마(高麗=고려) 씨를 받고 무사시 지역(현 사이타마 현과 도쿄 일대)에서 고구려 유민 ,799명을 이끌게 되었으며, 그가 죽은 뒤에는 약광을.. 2023. 5. 28.
신라인 출신으로 다른 나라에서 출세한 인물들 | 설계두 설계두는 신라에서 태어났으나 *골품제도에 불만을 품고 당나라로 건너간 뒤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 종군하여 주필산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 골품제도 : 신라의 신분제로, 귀족을 성골, 진골, 6두품, 5두품 등으로 구분하는 제도이며, 각 등급마다 관직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주필산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24 제1차 고당전쟁 3편_주필산 전투 https://youtu.be/E0l21CW4UvA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안시성 전투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신성ㆍ건안성 전투 파죽지세로 고구려가 자랑하는 요동의 주요 성들을 함락시킨 당군은 개 historicalhisto.. 2023. 5. 27.
백제 유민 출신으로 다른 나라에서 위세를 떨친 인물들 | 흑치상지 흑치상지는 달솔(백제의 제2관등)의 직위에 있었으나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하자 임존성에서 거병하여 복신과 함께 부흥운동을 주도하니 3만의 무리가 모여들었고, 2백여 개의 성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백강 전투의 패배와 잇따른 내분으로 지도층이 분열되자 흑치상지는 변절하여 당나라에 항복하고 지수신이 버티고 있던 백제부흥군의 마지막 거점인 임존성을 함락시켜 백제부흥운동을 좌절시켰습니다. 이후에는 당나라로 건너가 토번과 돌궐을 상대로 혁혁한 공을 세우며 국공의 벼슬을 받았으나 역모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에 투옥되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 부여태비 부여태비는 의자왕의 증손녀로 당나라 황족의 부인이 되었는데, 남편이 왕(제후왕)이 되면서 왕비가 되었고, 아들이 그 .. 2023.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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