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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백제를 세운 여걸 중의 여걸, 소서노 https://youtu.be/-b2dqSwaguo 이번 시간에는 삼국시대의 두 축인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하는데 큰 역할을 한 소서노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소서노는 기원전 66년, 졸본부여의 5부족 가운데 하나인 계루부의 공주 또는 지역의 유력자인 연타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성장하여 북부여 왕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인 우태가 일찍 죽어 과부가 되었지만, 아버지와 남편에게 넉넉한 유산을 받고 든든한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던 소서노는 큰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 주몽과 힘을 합하여 고구려를 세우다 그러던 때에 소서노는 동부여에서 금와왕의 아들들에게 쫓겨 졸본으로 들어온 주몽을 만났고, 두 세력이 힘을 합치자 백발백중의 활 .. 2021. 8. 4.
머슴에서 왕이 된 남자 미천왕 https://youtu.be/j9KHjh_dBVU 이번 시간에는 한사군을 몰아내고 고구려를 중흥시킨 미천왕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고구려 15대 왕인 미천왕의 이름은 을불이고 13대 왕인 서천왕의 손자이며, 고추가 돌고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14대 왕이었던 봉상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친족인 안국군 달가와 미천왕의 아버지인 돌고에게 반역 혐의를 씌워 처형하자 을불은 신변에 위협을 받고 도주하였습니다. | 을불, 왕족에서 머슴으로 전락하다 을불은 도망치는 데 성공하여 다다른 곳이 수실촌이었고, 그곳에서 신분을 숨긴 채 '음모'라는 사람의 집에 머슴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음모는 을불의 신분을 알지 못했기에 을불에게 낮에는 나무를 해오도록 하고, 밤에는 집 주변에 있는 연못에서 개구리가.. 2021. 8. 3.
고구려의 멸망 https://youtu.be/eyIphWEUjWM 이번 시간에는 고구려의 멸망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제2차 고당전쟁 661년 봄,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하남ㆍ하북ㆍ회남 지방의 67개 주에서 4만 4천여 명의 병사를 징발하여 평양도행군대총관 유백영과 누방도총관 정명진이 지휘하고 있는 군영으로 가게 하고, 소사업을 부여도행군총관으로 삼아, 회흘(위구르) 등 여러 부의 병사를 거느리고 평양으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같은 해 4월에는, 임아상을 패강도행군총관으로, 계필하력을 요동도행군총관으로, 소정방을 평양도행군총관으로 삼아 소사업과 돌궐, 거란 등 여러 군사를 합해 35개 군단이 바다와 육지로 길을 나누어 동시에 진군하였습니다. 몇 달 후 8월에는 소정방이 패강에서 고구려군을 물리치고 평양.. 2021. 8. 2.
백제의 마지막 희망 복신 https://youtu.be/oPZgK6G9LVQ 이번 시간에는 백제 멸망 후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했던 복신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백제의 멸망 660년, 신라에서 김유신이 이끄는 5만 군사와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군사가 연합하여 백제를 침략하였습니다. 백제는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 김유신의 군대에 맞서 4차례나 막아내었으나 관창과 반굴의 희생으로 사기가 오른 신라군을 막지 못하고 전멸당했습니다. 게다가 웅진강(현재 금강) 지역에서 백제군이 당나라의 수륙군에게 돌파당하면서 상륙을 허용했습니다. 그러자 의자왕은 수도인 사비성보다 방어에 유리한 웅진성으로 피난을 갔는데 웅진의 방령이었던 예식진이 배신하여 의자왕을 사로잡아 소정방에게 바치면서 백제는 저항의 구심점을 잃게 되.. 2021. 8. 1.
1차세계대전 이전 가장 많은 군대를 물리친 고구려 요동성 이번 시간에는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백만 군대에 맞서 민족의 방파제 역할의 중심에 있던 고구려 요동성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https://youtu.be/icOgRFWV8l8 | 수나라의 중국 통일과 고조되는 전운 589년, 수나라의 문제 양견은 중국의 남조 진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약 400년 동안 지속되었던 위진남북조 시대를 마치고 중국을 통일하였습니다. 604년, 아버지(수 문제)와 형(양용)을 죽이고 즉위한 양제 양광은 주변국 중 고구려만 입조와 조공을 거부한 일과 598년에 말갈 군사 1만여 명을 이끌고 요서를 침공한 일로 이를 갈고 있던 터라 612년 정월에 양제가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공격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군사만 113만 3800명이었고 군량 수송을 맡은 사람의 수.. 2021. 7. 31.
12명의 결사대로 몽골군에 2번 승리한 김경손 장군 이번 시간에는 몽골의 침입 때 귀주성 전투와 이연년 형제의 난을 진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김경손 장군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https://youtu.be/JYMtOOW9d-U | 몽골의 침입 1225년 1월, 몽골 사신 저고여의 피살 사건(고려에 사신으로 온 뒤 국경에서 누군가에 의해 피살됨)을 구실로 몽골의 오고타이 칸은 살리타이를 보내 고려를 침략하였고, 1231년 8월, 몽골군은 압록강을 지나 함신진과 철주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이후 몽골군이 정주까지 침입하자, 단 12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한 장군이 있었으니 당시 분도장군으로 근무하던 김경손 장군이었습니다. | 귀주성 전투 하지만 김경손 장군이 성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주민과 군사들이 모두 도망가버렸기 때문에 12명의 병사와 함.. 2021. 7. 30.
발해의 또다른 시작! 발해부흥운동 https://youtu.be/uU7UHdDmivM 이번 시간에는 발해 멸망 후 이어진 발해부흥운동(후발해, 정안국, 흥요국, 대발해국)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 후발해의 역사 925년 요나라(거란족)의 침입으로 926년에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가 함락되면서 발해는 멸망하였습니다. 발해의 멸망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 발해는 왜 멸망했을까? https://youtu.be/QtCcFjkpgXU 이번 시간에는 발해의 멸망과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발해의 10대 왕인 선왕이 무너져가던 발해를 일으켜 세워 전성기를 이룩했고(해동성국) 11대 왕인 대이진과 1 historicalhistory.tistory.com 요 태.. 2021. 7. 29.
발해는 왜 멸망했을까? https://youtu.be/QtCcFjkpgXU 이번 시간에는 발해의 멸망과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발해의 10대 왕인 선왕이 무너져가던 발해를 일으켜 세워 전성기를 이룩했고(해동성국) 11대 왕인 대이진과 12대 왕인 대건황까지 그 기세는 이어졌다고 합니다. 발해의 전성기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 해동성국 발해의 전성기 https://youtu.be/7VsMYXEnVKU | 선왕 대인수의 즉위 818년 발해의 9대 왕인 간왕이 죽자 대인수가 10대 왕(선왕)으로 즉위하였고 연호를 '건흥'(建興)이라고 제정하였습니다. 연호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historicalhistory.tistory.com | 발해.. 202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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