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에 제일 먼저 입성하고, 이어서 평안도로 북상하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 제1군은 어느덧 평양 인근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동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강을,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동강을...
그리고 강을 건너려면 배가 있어야 했지만 일본군은 배가 없었고, 조선군은 일본군이 오기 전에 배를 북쪽으로 이동시켜 놓았기 때문에 일전의 한강 전투 때처럼 양군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한강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0
하지만 선조는 좌의정 윤두수, 도원수 김명원, 이조판서 이원익 등에게 3~4천여 명의 병사들로 평양성 사수를 명하고는 의주(현재의 평안북도 의주군)로 또 파천하였습니다.
선조의 파천 이유는 자기 목숨 살자고 도망간 것이 제일 큰 이유였지만, 그것이 임진왜란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일본군 : 조선의 왕(선조)만 잡으면 전쟁도 끝인데...
6월 13일, 고니시가 이끄는 일본군은 양각도를 건너 대동관을 공격해왔고, 조선군은 이에 맞서 화포를 쏘았지만,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평화 상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포를 쏘는 것이 미숙하여 성 위에서 쏜 포탄은 강물 속에 떨어지고 소리도 맹렬치 못하여 왜적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강변에 나와 목욕까지 하는 형편이었다.
- 류성룡 [징비록]
한강 전투 때 소수의 일본군이 헤엄쳐오자 조선군이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던 모습이 연상되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또다시 형편없는 모습을 보인 조선군이었지만 조선군 지휘부의 작전으로 일본군 진영을 기습하여 수백 명을 죽이고, 말 수십 필까지 빼앗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역습을 받고 후퇴하고 말았고, 6월 14일 새벽, 고언백과 400명의 병사에게 배를 타고 능라도를 지나 다시 한번 기습 공격을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고언백과 병사들은 적장 나카무라를 죽이고, 일본군 진영에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히긴 했지만, 후방에 있던 구로다 나가마사의 군대가 합류하면서 조선군은 다시 퇴각하였습니다.
* 구로다 나가마사 : 일본군 제3군 선봉장이며, 황해도로 진출하여 고니시의 1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함
그러나...
조선군은 배를 타지 못해 왕성탄의 수심이 얕은 곳으로 걸어서 퇴각하고 말았고, 이 모습을 본 일본군은 배 없이도 대동강을 건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곧바로 강을 도하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습니다.
일설에는 퇴각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이 추격해오는 것을 겁 먹고 병사들이 배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누군가가 일부러 배를 타고 먼저 빠져나갔기 때문에 나머지 병사들이 왕성탄으로 걸어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란봉이 점령당하면서 평양성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조선군 지휘부는 군사들을 성 밖으로 내보낸 뒤 무기를 풍월루의 연못에 버리고(청야작전) 이원익은 선조를 따라 의주로, 윤두수와 김명원은 순안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6월 15일), 일본군은 평양성에 조선군이 완전히 철수했음을 확인하고 성으로 입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약 1000년 전, 고구려가 평양성을 사수하기 위해 수십 만의 수ㆍ당ㆍ신라군에 맞서 얼마나 격렬하고, 처절하게 저항해왔는지를 안다면 임진왜란의 제1차 평양성 전투는 조선의 군대가 얼마나 볼품없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 평양성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고수전쟁 당시의 평양성 전투(수양제의 침입 부분 참고)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21
고당전쟁 당시의 평양성 전투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11
다음 시간에는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을 막기 위한 방어전인 웅치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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