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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22] 금산성을 탈환하기 위해 모이는 관군과 의병

by 역사채우기 2021.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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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 다룰 내용은 6월 23일, 금산군수 권종이 전사하면서 함락된 금산성 전투가 아닌 고경명의 의병과 전라도 방어사 곽영의 관군이 연합하여 금산성을 공격한 전투입니다.


7월 7일의 웅치 전투와 7월 9일의 안덕원 전투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본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일본 제6군은 목표였던 전주성 공격을 잠시 미루고 금산으로 후퇴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노리고 있던 대규모의 병력이 있었으니
바로 고경명이 이끄는 6천 7백의 의병이었습니다.

고경명

 


| 고경명은 누구인가?

고경명은 임진왜란 직전(1590년)에 통정대부 겸 동래부사로 재직할 때 청렴했고, 백성들을 잘 다스렸으나
정철의 건저의 문제에 연루되면서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상태였습니다.

만약 이때 고경명이 파직되지 않았다면 동래성 전투는 고경명이 지휘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동래성 전투 당시의 동래부사 송상현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동래성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45

 

[임진왜란3] 동래성 전투!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

https://youtu.be/_sDBIdDCWys 1592년 4월 13일, 일본 제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18,700명의 군사와 700척의 전함을 이끌고 부산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고 다음 날인 4월 14일, 상륙하여 부산진성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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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경명은 5월 29일에 담양에서 *유팽로 등과 만나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세운 후 격문을 띄워 도내에 발송하니 고경명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습니다.

 

* 유팽로 :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장으로 고경명의 휘하에서 활약함

 


6월 11일, 고경명은 담양에서 출병했는데 그때는 삼도근왕군용인 전투(6월 5~6일)에서 패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으므로 흩어진 군사 중 일부가 고경명의 의병으로 합류해 그 규모만 6천 7백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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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이 이끄는 의병(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용인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두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9

 

[임진왜란17] 8만의 군사를 동원한 조선! 반격의 서막이 될 것인가?

| 조선! 개국 이래 최대 규모의 군사 결집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초기에는 일본군에게 패하거나 도주하기 바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 한양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바다에

historicalhistory.tistory.com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0

 

[임진왜란18] 조선 최악의 전투! 용인 전투

| 군사 수가 전투의 모든 것은 아니었으니.. 6월 5일의 전투로 삼도근왕군의 사기는 매우 떨어졌고, 이광(전라도순찰사이자 삼도근왕군의 맹주)은 진을 옮기기 전에 지형이 어떤지 탐지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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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까지의 의병 중에서는 고경명의 의병이 가장 규모가 컸으니 용인 전투의 패전으로 충격에 빠졌던 백성들은 고경명의 의병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고경명은 수도 한양을 탈환하는 것을 목표로 진군하였으나 고바야카와의 일본 제6군이 *금산성을 점령하고 전주성까지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 6월 23일에 고바야카와의 군대가 금산군수 권종이 전사하면서 금산성이 점령당한 일


7월 3일, 고경명 휘하 의병들은 본도(전주)를 구원하는 게 우선이라 여겨 군사를 진산(현재의 금산군 진산면)으로 옮겼고, 웅치 전투안덕원 전투로 전력 손실이 커 금산으로 후퇴했던 고바야카와의 군대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본 제6군 선봉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웅치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2

 

[임진왜란20]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을 막아라! 웅치 전투

일본 제6군을 이끌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조선을 분할통치하자는 계획에 따라 전라도로 진출하려 하였으나 곽재우의 의병에게 정암진에서 패배하여 성주로 퇴각하면서 잠시 계획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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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원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3

 

[임진왜란21] 웅치의 조선군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안덕원 전투

7월 7일,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일본 제6군은 웅치에서 의병장 황박과 오정달의 제 1방어선과 나주 판관 이복남의 제 2방어선, 그리고 김제 군수 정담의 최후방어선까지 혈전 끝에 무너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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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금산성 공격에는 전라도 방어사 곽영의 군대까지 합류하여 군세는 더욱 커졌고, 날랜 병사들이 의병에 많이 모여들어 기세 또한 매우 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제1차 금산 전투에 대해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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