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04 [임진왜란35] 국경인의 반란과 임해군, 순화군의 악행 | 가토 기요마사의 함경도 점령 7월 17일~18일의 해정창 전투에서 조선군이 궤멸당하자 더이상 자신을 막을 군대가 없다고 판단한 가토 기요마사의 일본 제2군은 다시 빠른 속도로 진군하여 경성과 부령을 지나 7월 22일에는 임해군과 순화군이 피신해있는 회령 인근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이때 해정창 전투에서 패하고 경성으로 퇴각해있던 한극함은 가토 군대가 경성으로 오기 전에 국경을 넘어 여진족이 있는 부락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 국경인의 반란 7월 23일, 가토의 군대는 회령진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회령의 아전이었던 *국경인이 임해군과 순화군 두 왕자의 악행과 자신이 회령으로 유배된 것에 원한을 품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조선 조정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 여기서 국경인은 사람 이름이지 국경에 있는 사람을 일컫지.. 2021. 11. 22. [임진왜란34] 가토 기요마사의 함경도 진출을 막아라! 해정창 전투 | 일본군의 분할 진격과 조선 왕자들의 근왕병 모집 일본군은 조선의 수도 한양을 점령한 직후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1군은 평안도로 진군하였고, 구로다 나가마사의 제3군은 황해도로 진출하여 1군을 지원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 제2군 가토 기요마사는 함경도로 진군하였고, 모리 요시나리의 제4군은 강원도로 진출하여 2군을 지원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조선 조정도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 뒤 선조가 있는 조정이 일본군의 손에 넘어갈 것에 대비하여 조정을 둘로 나누어 광해군에게 분조를 이끌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임해군을 함경도로, *순화군은 강원도로 보내 아직 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은 지역에서 근왕병을 모집하도록 하였습니다. * 임해군(이진) : 세자 광해군의 친형으로,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왕.. 2021. 11. 21. [임진왜란33] 조선의 힘으로 평양성을 탈환하라! 제3차 평양성 전투 조선군은 육지와 바다에서 일본군을 모두 막아내면서 전라도 수호에 성공하였고, 요동 부총병 조승훈의 명나라 지원군까지 왔으니 이번 기회에 조선 조정은 평양성을 탈환하여 전황을 완전히 뒤집으려 했으나 순안군수 황원의 오인 보고와 명나라 장군들의 공명심 때문에 고니시 유키나가의 계략에 말려든 조명연합군은 첫 번째 패전을 기록하였습니다. 한편, 제2차 평양성 전투에서 겨우 목숨만 건진 조승훈은 요동으로 돌아가 버렸고, 조선 조정은 평양에 있는 고니시의 군대가 지난 전투에서 퇴각하는 조명연합군을 추격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러 차례의 전투로 인해 전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 판단하여 그동안 모은 병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조선군만의 힘으로 평양성을 다시 탈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임중량, 윤봉, 그리고 .. 2021. 11. 20. [임진왜란32] 조명연합군의 첫 전투! 제2차 평양성 전투 |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 실패 육지에서는 일본 제6군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군대가 전라도 점령에 실패했고, 바다에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한산도에서, 구키 요시타카와 가토 요시아키가 안골포에서 패퇴하면서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임진왜란 시기 일본군의 전라도 공격에 대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category/%EC%9E%84%EC%A7%84%EC%99%9C%EB%9E%80/%EC%9D%BC%EB%B3%B8%EA%B5%B0%EC%9D%98%20%EC%A0%84%EB%9D%BC%EB%8F%84%20%EA%B3%B5%EA%B2%A9 이로써 평양까지 진출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 제1군은 육지에서는 관군과 의병의.. 2021. 11. 19. [임진왜란31] 부산 인근까지 다다른 조선 수군! 이순신의 3차 출정 성과 | 이순신의 3차 출정 성과 7월 6일에 다시 한번 연합함대를 결성하여 3차 출정에 나선 조선 수군은 7월 8일에 한산도에서, 7월 10일에 안골포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2번의 해전을 통해 적선 총 70여 척을 격침시키고, 12척을 나포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조선 수군은 부산 인근까지 제해권을 넓혔고, 일본 수군은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인 부산조차도 머지않아 공격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으로 전투를 총괄한 이순신은 정헌대부(정2품)으로,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경상우수사 원균은 가의대부(종2품)으로 승진하였습니다. * 7척밖에 없던 원균에게 25척을 이끈 이억기와 같은 포상을 한 점은 아쉽습니다. |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탈출 시도 한편, 한산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2021. 11. 18. [임진왜란30] 우수한 무기와 탁월한 전략! 안골포 해전 7월 8일,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73척의 함대를 물리치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한산도 대첩) * 73척 중 47척 격침, 12척 나포, 14척은 퇴각 이는 지금까지 치렀던 해전보다 훨씬 더 큰 전과를 이룬 해전이었기에 장수와 병사들 모두 매우 기뻐했고, 승세를 타고 가덕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저물고 역풍도 크게 불어서 인근에 정박해 있었는데 승리의 여운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안골포에 적선이 있다는 보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 안골포 : 안쪽이 깊은 산골처럼 보인다는 뜻에서 안골포라 불리게 되었으며, 현재의 경남 창원시 진해구 청안동 이제 부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일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와키자카 야스하루.. 2021. 11. 17. [임진왜란29] 급변하는 전황! 한산도 대첩의 결과와 평가 | 한산도 대첩의 결과 한산도 대첩으로 조선 수군은 부산을 제외한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확보하였으며, 이 시기에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일본 제6군의 전라도 진출마저 좌절되면서 수륙 양면에서 일본군의 전라도 진입을 *원천봉쇄하였습니다. * 웅치, 이치, 안덕원, 금산 전투를 치르면서 일본 제6군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곡창지대였던 호남 지방이 보존되면서 전라도가 병참기지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할 수 있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계획했던 수륙병진 작전이 완전히 물거품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수군을 만나기만 하면 패배하는 일본 수군을 보고 "더는 조선 수군과 싸우지 말고 해안에 성을 쌓아 방어에 주력하라" 라는 해전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했으니 당시 일본.. 2021. 11. 14. [임진왜란28] 한산도 대첩!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한산도에 펼쳐진 학의 날개 https://youtu.be/htWDDIt-qD8 | 한산도 대첩 7월 8일, 조선 수군은 5~6척의 판옥선이 *견내량으로 진격하여 정박해있던 일본 수군을 향해 화포를 발사했습니다. * 견내량 : 경남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경남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 사이의 해협 소수의 전선으로 피해를 줌으로써 일본군을 자극하기엔 충분했고, 전공을 세울 욕심에 들떠있던 와키자카는 큰 의심 없이 미끼를 물어 조선 수군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함대는 첨저선이었으므로 평저선인 조선의 판옥선에 비해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에 퇴각하는 판옥선에 빈틈을 주지 않고 따라붙은 후 조총을 쏘며 싸움을 걸었습니다. * 첨저선은 선체의 바닥이 뾰족한 선박으로 저항을 적게 받아 속력이 빠르나 선회하기 어렵고, 화.. 2021. 11. 13.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2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