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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55

[임진왜란5] 상주 전투와 도망가는 관군 | 이번 전투 이길 수 있을까? 이일은 3백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대구로 향하려 했으나 당시 병조판서였던 홍여순은 무슨 일이든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는 나쁜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홍여순은 민간의 잡인들을 병적에 등록시켜 군대를 편성해 놓았고, 그 군대에는 서리와 유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 서리 : 각 지방에서 근무하던 하급 관료 게다가 급하게 징집된 잡인들이 군사훈련을 제대로 받았을 리 없었으며, 무기 대신 책을 들고 군대에 차출되기 싫다며 호소하는 유생들이 소란을 피우기도 하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일이 북병사로 근무하던 시절 조산보만호 이순신의 거듭된 병력 증원 요청을 거절하여 녹둔도에서 큰 피해를 받게 한 원인을 제공하였고(녹둔도 전투),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했던 일을 알고있던 병사들이 이일.. 2021. 10. 13.
[임진왜란4] 김해성 전투와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 https://youtu.be/wyHFiJNSUew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 제1군이 부산의 여러 성을 함락하고 북진하고 있을 무렵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2군, 구로다 나가마사가 이끄는 3군도 부산에 각각 상륙하였습니다. | 김해성 전투 그 중 구로다 나가마사의 1만 3천 병력은 김해성으로 향했습니다. 김해성을 지키는 김해부사 서예원과 초계군수 이유검은 불과 1천여 명의 병력으로 4월 17일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공격을 3차례나 막았으나 점점 패색이 짙어지자 백성들을 버리고 각자 살길을 찾아 도망쳤습니다. 지휘관이 도망치자 남은 군민들은 사기가 떨어졌으나 그 자리를 송빈, 김득기, 이대형, 류식 등이 각각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전투를 지휘하다 모두 장렬히 전사하면서 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이들은 임진.. 2021. 10. 12.
[임진왜란3] 동래성 전투!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 https://youtu.be/_sDBIdDCWys 1592년 4월 13일, 일본 제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18,700명의 군사와 700척의 전함을 이끌고 부산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고 다음 날인 4월 14일, 상륙하여 부산진성을 공격하였습니다. 부산진성의 백성들과 수백의 군사들은 첨사 정발의 지휘 아래 죽기를 각오하고 맞섰으나 모두 전사하면서 성이 함락되었고, 4월 15일에는 서평포와 다대포를 침략한 일본군을 다대포첨사 윤흥신이 군민들과 함께 결사항전하였으나 다대포성 역시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부산 일대에 교두보를 확보한 일본군은 동래성(현재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으로 향했습니다. 동래성은 앞서 전투를 치렀던 부산진성과 다대포성보다 규모가 큰 성이었고, 동래성을 지키는 장군은 동래부사 송상.. 2021. 10. 11.
[임진왜란2] 다대포 첨사 윤흥신과 군민들의 항쟁! 다대포성 전투 1592년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도로 일본 제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700척의 함대 18,7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부산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습니다. 그렇게 일본군은 부산진성을 공격하였고, 부산진첨사 정발과 군민들은 무기와 병력의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도 결사항전했으나 성이 함락되면서 성주를 포함한 군민 모두가 전멸당합니다. 이렇게 임진왜란의 첫번째 전투인 부산진성 전투는 일본군이 승리했고, 부산진성을 점령한 일본군은 서평포와 다대포로 진군하며 부산 각지로 세력을 넓히고 있었습니다. 그 중 다대포 성은 둘레가 약 541m, 높이가 3.9m의 석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다대포 첨사 윤흥신은 거느리는 병사가 수백에 불과했으나 일본군의 공격에 어느 정도 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랬.. 2021. 10. 10.
[임진왜란1] 전쟁의 시작! 부산진성 전투 https://youtu.be/UhyYSoJbFRU 이번 시간부터는 임진왜란을 시리즈로 이어나가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건조하고 시험까지 모두 완료한 날이 1592년 4월 12일이었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1592년 4월 13일, 일본 제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700척의 함대와 18,7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부산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습니다. 거북선에 대해 더 알고싶으시면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33 조선 최고의 돌격전함! 거북선 https://youtu.be/4bkZUX0zezw 이번 시간에는 조선 최고의 돌격전함인 거북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태종 시기 첫 거북선 거북선은 조선 초기 141.. 2021. 10. 9.
조선 최고의 돌격전함! 거북선 https://youtu.be/4bkZUX0zezw 이번 시간에는 조선 최고의 돌격전함인 거북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태종 시기 첫 거북선 거북선은 조선 초기 1415년(태종 15년),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고려 말부터 이어진 왜구의 침입이 적극적인 토벌 작전으로 한층 기세가 꺾이긴 했으나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으므로 조선 수군의 전력 강화와 왜구의 침략을 근절하기 위한 일환으로 거북선을 건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30 최무선, 화약의 개발로 위기에 처한 고려를 구하다! https://youtu.be/moNcYHptkes | 고려 말 왜구의 발.. 2021. 9. 27.
조선의 비행기, 비차! https://youtu.be/OnbSC71wnoc 이번 시간에는 조선의 비행기 '비차'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때는 조선시대로, 전북 김제 출신의 정평구는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자, 무과로 전환하여 응시한 뒤 합격하여 무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정평구는 전라우수사 이억기(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활약한 수군 장수)에게 발탁되어 진주병영 별군관으로 근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진주목사 김시민의 휘하에서 화약을 다루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진주성 전투 때 비차(바람을 타고 비행할 수 있는 수레)를 만들어 고립된 진주성과 외부 사이에 연락을 취해 식량을 나르는 데 사용하였고, 신경준의 [여암전서]에는 왜군에게 포위되어 영남의 성에 갇혀 있던 성주를 비차..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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