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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55

[임진왜란23] 고경명의 의병과 곽영의 관군의 연합작전! 1차 금산 전투 마침내 7월 9일, 고경명은 정예 기병 수백 명을 앞세워 적진을 돌파하려 했는데 오히려 역습을 당해 후퇴하였습니다. 이에 고경명이 직접 북을 치며 싸움을 독려하자 군사들의 사기가 진작되어 일본군은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습니다. 후퇴한 일본군은 토성을 쌓아 방어선을 구축하려 하였고, 이 모습을 본 고경명은 성밖의 관사를 불태운 뒤 포를 쏘니 성 내부까지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그러자 일본군은 성문을 열고 나와 포위망을 뚫으려 했으나 고경명의 의병이 사면에서 공격하자 큰 피해를 입고 감히 나오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곽영의 관군은 적극적으로 싸움에 임하지 않았으며 일본군이 구축한 토성은 견고해서 함락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고경명은 잠시 후퇴하였습니다. 이때 전라도 방어사 곽영은 고경명에게 .. 2021. 11. 7.
[임진왜란22] 금산성을 탈환하기 위해 모이는 관군과 의병 이번 시간에 다룰 내용은 6월 23일, 금산군수 권종이 전사하면서 함락된 금산성 전투가 아닌 고경명의 의병과 전라도 방어사 곽영의 관군이 연합하여 금산성을 공격한 전투입니다. 7월 7일의 웅치 전투와 7월 9일의 안덕원 전투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본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일본 제6군은 목표였던 전주성 공격을 잠시 미루고 금산으로 후퇴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노리고 있던 대규모의 병력이 있었으니 바로 고경명이 이끄는 6천 7백의 의병이었습니다. | 고경명은 누구인가? 고경명은 임진왜란 직전(1590년)에 통정대부 겸 동래부사로 재직할 때 청렴했고, 백성들을 잘 다스렸으나 정철의 건저의 문제에 연루되면서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상태였습니다. 만약 이때 고경명이 파직되지 않았다면 동래성 전투는 고경명이 지휘했을.. 2021. 11. 6.
[임진왜란21] 웅치의 조선군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안덕원 전투 7월 7일,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일본 제6군은 웅치에서 의병장 황박과 오정달의 제 1방어선과 나주 판관 이복남의 제 2방어선, 그리고 김제 군수 정담의 최후방어선까지 혈전 끝에 무너뜨리면서 웅치를 기어코 점령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전투에서 김제 군수 정담과 많은 군사들이 전사했으나 일본군 역시 큰 피해를 입었고, 7월 9일에는 일본군이 그들의 목표였던 전주 부근으로 진출했습니다. 이에 맞서 조선군은 전라감사 이광의 지휘 아래 안덕원에는 방어선을 구축하고, 전주성은 병사한 전주부윤 권수를 대신해 이정란이 지키게 했으며, 이광 본인은 남고산성(전주)을 최후방어선으로 삼아 지키고 있었습니다. * 남고산성은 고덕산 자락을 따라 쌓았기 때문에 고덕산성으로도 부르며,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수도인 완산주(전주).. 2021. 11. 2.
[임진왜란20]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을 막아라! 웅치 전투 일본 제6군을 이끌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조선을 분할통치하자는 계획에 따라 전라도로 진출하려 하였으나 곽재우의 의병에게 정암진에서 패배하여 성주로 퇴각하면서 잠시 계획을 보류하였습니다. 정암진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4 [임진왜란12] 홍의장군 곽재우와 정암진 전투 | 일본군의 전라도 진군 작전 임진왜란 발발 후 부산진성 전투를 시작으로 임진강 전투에 이르기까지 조선군의 연이은 패전과 도주로 조선의 국토 중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의 대부분은 historicalhistory.tistory.com 그러나 전라도를 수중에 넣기 위해 다시금 진군하였고, 일본군의 진군 소식을 들은 전라감사 이광은 전라도 방어사 곽영을 .. 2021. 11. 1.
[임진왜란19] 제1차 평양성 전투 한양에 제일 먼저 입성하고, 이어서 평안도로 북상하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 제1군은 어느덧 평양 인근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동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강을,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동강을... 그리고 강을 건너려면 배가 있어야 했지만 일본군은 배가 없었고, 조선군은 일본군이 오기 전에 배를 북쪽으로 이동시켜 놓았기 때문에 일전의 한강 전투 때처럼 양군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한강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0 [임진왜란8] 선조의 파천과 한강 전투 https://youtu.be/30ESQmo0aSM 1592년 4월 13일에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 부산과 김해, 상주.. 2021. 10. 31.
[임진왜란18] 조선 최악의 전투! 용인 전투 https://youtu.be/x582iYHooDQ | 군사 수가 전투의 모든 것은 아니었으니.. 6월 5일의 전투로 삼도근왕군의 사기는 매우 떨어졌고, 이광(전라도순찰사이자 삼도근왕군의 맹주)은 진을 옮기기 전에 지형이 어떤지 탐지해보자는 윤선각(윤국형이라고도 하며, 충청도순찰사)의 조언을 듣지 않고 신시(오후 3시~5시)에 진을 광교산 근처로 옮겼습니다. * 광교산 : 현재의 수원시와 용인시에 걸쳐있는 산으로, 광교신도시가 인근에 있습니다. * 6월 5일의 전투는 용인 전투의 일부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9 [임진왜란17] 8만의 군사를 동원한 조선! 반격의 서막이 될 것인가? | 조선! 개국 이래 최대.. 2021. 10. 30.
[임진왜란 15] 당항포해전!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합류 6월 4일, 조선 수군은 당포해전의 기쁨을 완전히 누리기도 전에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수십 척의 함대를 보며 곧바로 전투 준비에 임했습니다. 조선 수군은 지난 며칠간 사천해전과 당포해전을 연이어 치르면서 떨어지고 있는 물과 식량, 화약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지난 1년간 이순신의 지휘 아래 엄청난 훈련을 받았고, 지난 5차례에 이르는 전투를 통해 실전 경험까지 쌓으며 베테랑으로 거듭나긴 했지만, 언제까지 연이어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 5차례의 전투 : 옥포, 합포, 적진포, 사천, 당포해전 |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합류 그러나 조선 수군을 향해 다가오는 함대의 정체는 이순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함대였습니다. 이억기가 이끌고.. 2021. 10. 25.
[임진왜란 14] 파죽지세의 조선 수군! 당포해전 6월 2일 8시경,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사천해전을 승리로 이끈 뒤 사량도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당포에 왜선이 정박해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곧바로 당포(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로 진군했습니다. 당시 당포에는 대선 9척, 중소선 12척으로 총 21척의 왜선이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앞서 사천해전 때와 같이 곧바로 거북선을 보내 적진을 뒤흔들어 놓은 뒤 주력인 판옥선을 이끌고 남은 적선을 분멸시키도록 했습니다. 이 전투 역시 수적으로 조선군이 우세했고, 연전연승으로 사기까지 충만해있던 데다가 일본군의 조총은 조선군의 화포에 상대가 되질 못했으니 조선군은 어렵지 않게 적을 물리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투가 조선군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던 중 일본군 대장선 역시 판옥선과 거북선에서 날아드는 화살과 포탄을 .. 2021.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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