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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55

[임진왜란59] 과도한 자신감, 성급한 진격의 결과! 벽제관 전투(2) 1월 25일, *여석령에서 벌어진 조명연합군의 정탐병이 일본군의 정탐병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은 전공을 세울 욕심에 자신의 기병만 이끌고 *벽제관으로 진군하였습니다. * 여석령 : 숯돌고개라고도 하며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에 위치해 있다. * 벽제관 :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해있으며, 중국 사신들이 한양으로 들어가기 하루 전 날 머물던 역관 그런데 벽제관은 비가 온 뒤라 땅이 진창이 되어 기병이 기동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었고, 그 틈을 노려 매복해있던 일본군이 일제히 조총을 발사하였습니다. 마치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의 기마병이 늪지대에 빠진 것이 연상되는 장면입니다. 명군은 그제서야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으나 백병전에 강한 일본군 3개 부대에 포위된 후였고, 평양성에서 불랑기포를.. 2022. 1. 4.
[임진왜란54] 쌀로 말을 씻겨라! 독산성 전투 이치 전투의 승리로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을 차단한 권율은 공을 인정받아 광주목사에서 전라도 관찰사 겸 순찰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치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6 [임진왜란24] 이치 전투! 일본군의 전주성 진출을 차단하라 7월 7일에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겨우 웅치(곰티재)를 넘은 일본 제6군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군대는 군대를 둘로 나누어 일부는 전주성으로 향했고, 본대는 금산에서 전주로 가는 또 하 historicalhistory.tistory.com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7 [임진왜란25] 이치 전투의 결과와 영향 이치 전투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조선군의 승리.. 2021. 12. 23.
[임진왜란51] 진주대첩(1) 전운이 드리우는 진주성 9월 25일의 노현ㆍ창원성 전투를 모두 승리한 일본군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진출하는 관문인 진주성으로 향했습니다. 이 병력은 무려 3만이었으며, 그들을 이끄는 수장은 일본 제8군 선봉장이자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 그리고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군 전체의 총대장 역할을 수행하던 우키타 히데이에였습니다. 한편, 진주성은 병사한 진주목사 이경을 대신하여 김시민이 진주목사로 성을 지키고 있었으며, 앞서 사천ㆍ고성ㆍ진해의 적을 공격하여 무찌른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주성은 김시민의 병력 3,700과 곤양군수 이광악의 군사 100여 명을 합하여 3천 8백의 군사를 그느리고 있었으니 일본군의 군세에 비한다면 매우 열세인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주성은 외성과 내성, 즉, 이중성벽으로 .. 2021. 12. 15.
[임진왜란50] 경상우병사 유숭인의 항쟁! 노현ㆍ창원성 전투 | 일본 제3군의 진군 1592년 9월, 일본 제3군 선봉장 구로다 나가마사의 군대는 북쪽의 황해도에서 이정암의 군대와 싸웠고, 남쪽에서는 2만의 병력이 경상도의 완전 점령과 전라도로 진출하기 위해 창원으로 진군하였습니다. 이정암의 연안성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88 [임진왜란46] 이정암의 황해도 방어 작전! 연안성 전투 5월 18일, 일본 제2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는 김명원과 한응인이 지키던 임진강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임진강을 건넜습니다. 임진강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 historicalhistory.tistory.com 당시 창원성을 수비하던 경상우병사 .. 2021. 12. 13.
[임진왜란46] 이정암의 황해도 방어 작전! 연안성 전투 5월 18일, 일본 제2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는 김명원과 한응인이 지키던 임진강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임진강을 건넜습니다. 임진강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3 [임진왜란11] 거듭된 실책! 임진강 전투 일본군은 1군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가 평양으로(평안도로), 3군 구로다 나가마사가 황해도로, 2군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로, 4군 모리 요시나리는 강원도로 각각 진군하기로 정했고, 8군을 이끄 historicalhistory.tistory.com 가토의 다음 목표는 개성이었고, 개성은 개성유수 이정형과 그의 형이었던 이정암이 지키고 있었으나 별 피해도 주지 못하고 개성은 함락되었습니다. 이정암은 개성이 함락되기 전에 .. 2021. 12. 8.
[임진왜란44] 이제 남은 건 부산뿐이다! 적의 본진으로 진격하는 조선수군 1592년 8월, 일본군은 수도 한양에 주둔 중인 부대와 북상해있던 부대 일부가 김해와 부산, 이렇게 경상도 지방으로 남하하였습니다. 이를 알게 된 경상도 순찰사 김수는 조선 조정에 "위로 침범한 적도들이 낮에는 숨고 밤에 행군하여 양산, 김해강 등지로 잇달아 내려오는데, 짐짝을 가득 실은 것으로 보아 도망치는 낌새가 현저합니다" 라는 장계를 올렸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적의 본진인 부산 공격을 요청하였습니다. 사실 일본군 부대가 남하한 이유는 전라도 공격에 애를 먹고 있던 일본 제6군(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부대)을 지원하는 한편,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진입하는 통로인 진주성을 공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동안 일본군이 전라도 진출에 여러 번 고배를 마셨지만 그래도 전라도는 조선이나 일.. 2021. 12. 5.
[임진왜란43] 철저한 준비만이 살 길이다! 영원산성 전투 일본 제4군 선봉장 모리 요시나리의 군대는 강원도 점령을 목표로 하였고, 1592년 7월, 삼척, 정선, 영월, 평창을 차례로 점령한 후 원주로 향했습니다. 이에 원주 목사 김제갑은 군민 4천여 명과 함께 1달 치 군량을 갖고 원주의 영원산성에서 적을 막기로 하였습니다. * 김제갑이 보유했던 군량은 이보다 훨씬 많았으나 이전에 삼도순변사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서 싸울 때 무기와 군량을 많이 지원해 준 일이 있었기 때문에 1달치 밖에 보유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충주 탄금대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49 [임진왜란7] 일본군 조총병과 조선 기마부대의 회전! 탄금대 전투 https://youtu.be/1jEAWJFhjrg.. 2021. 12. 4.
[임진왜란42] 만고의 충신인가 무리한 공격인가? 제2차 금산전투 8월 1일, 조헌의 의병, 청주 방어사 이옥과 공주 목사 허욱의 관군, 그리고 영규의 승병이 연합하여 청주성을 탈환하였습니다. 청주성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81 [임진왜란39] 의병, 관군, 승병의 연합작전! 청주성 전투 1592년 6월 3일, 일본 제3군 선봉장 구로다 나가마사의 군대에 의해 청주성이 함락되면서 청주 방어사 이옥은 도망쳤고, 청주성은 하치스카 이에마사라는 장수가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후 7월 historicalhistory.tistory.com | 모두가 반대해도 나는 갈 것이다! 이후 조헌은 기세를 몰아 원래의 목표였던 금산을 탈환하려 했고, 군사를 지원받기 위해 충청도 순찰사 윤선각(윤국형),.. 2021.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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